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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 술술 읽히는 산문, 작고 소중한 삶의 의미들

혼자 조용히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도 작은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찾아 온 우울함, 방황, 이 감정들이 싫지는 않았지만 계속 둘 수는 없어 어떻게 달래면 좋을까 고민하다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책을 온라인으로 오더하고 e-book으로 보고 무려 미국땅에서 한국 책을 이래저래 편하게 보고 있지만, 아직도 "그냥" 서점에 가고 싶은 날이 있다. 서점까지 가는 그 길, 막 들어섰을때의 책 냄새, 책을 손으로 슥 뽑아 한번 훑어 보는 그 시간들. 역시 서점에 가는 건 책을 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보통 서점에서 어슬렁거리다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면 표지와 작가 소개, 띠지를 슥 보고, 멋대로 손이 가는 한 부분을 펼쳐 읽어본다. "여수의 영화관과 햄버거". 작가는 여수로 혼자 차를 몰아 멋진 자연 풍경을 구경하고 갓김치로 밥도 두공기나 먹었지만,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밤에 CGV의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본 영화와 끝나고 드라이브스루로 사 먹은 맥도날드였다. 헐. 나도 그 기분 알지. 혼자 여행을 갔을 때, 밤에는 다니기 싫어 호텔로 일찍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서 그 동네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그 기분, 호텔 근처 마켓에서 우리 동네 마켓에는 없는 맥주와 와인을 사서 호텔로 들어오는 그 기분. 심지어 도쿄에서 늦은 저녁 편의점 간식과 맥주를 사 들고 호텔에서 편하게 라디오스타를 챙겨 보던 그 기분. 작가에겐 서울에도 흔치 않다는 리클라이너와 드라이브스루라는 특이점이 있긴 했지만, 여행에 가서 별거 아닌 일상적인걸로 예상 밖의 즐거움을 느꼈다는 그 부분에서 난 엄청난 공감을 느끼고 말았다.  

 

서점에 한 시간 정도 머무른 뒤, 이 책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책에 대한 기대감이 아까의 우울함을 조금 날려주었다. 집에 가면, 햇빛이 들어오는 베란다 앞에 누워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읽어야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냥 책으로 구입하길 잘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또래의, 혼자 살고 있는 글쓴이라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심심한 제목으로 시작하다가 각 에피소드에 중간 쯤 갔을 때 훅 들어오는 작가의 담백한 자기 생각이 좋다. 몇몇 에피소드는 앗 하고 생각이 전환되는 순간이 있어 매우 재미있었다. 

 

올해 안에 코로나가 사라지면 좋겠지만, 아마 일년내내 계속 조심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주로 집에 있으면서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순 없을까. 나도 한번 가볍게 산문을 써볼까. 주제를 생각하려니 어려워져서, 이 책의 주제들로 내 생각들을 가볍게 써보기로 했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상관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