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리디북스 셀렉트를 시작하고 유일한 단점이 있다. 다양한 책을 원없이 볼 수 있게 되자 어렵게 책을 구입하던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건지, 앞의 몇 페이지를 읽고 흥미를 못 느끼면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인내심을 갖고 몇 페이지 더 나아가면 정말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나쁜 습관이 생겨버렸다. 고쳐야지 생각하던 차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이 책은 놀랍게도 술술익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메세지들과 함께.
솔직히 정말 오랜만에 내 취향의 글을 읽었다. 지루할 틈 없이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아나운서라는 알려진 사람이 저자라는 걸 모르고 그냥 읽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책을 다 읽어갈 때 쯤 저절로 깨닫게 된 건, 아 이 사람은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구나. 쌓이고 쌓인 독서내공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고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겠다. 다음에 도쿄에 한번 더 가게 된다면 작가가 방문했던 작은 서점들을 방문해 보고 싶다. 의외로 엘에이에는 재미난 서점이 없어서, 여긴 차라리 도서관이 재미있다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실제로 엘에이는 큰 도서 체인이 쇼핑몰에 위치해 있고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대신, 도시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도서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을 읽고나니, 우리 집 근처에 그런 개인 서점이 있어서 몰랐던 책도 발견하고 앉아서 읽다오기도 하는 행복한 장면들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타국에 사는 나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꿈꿔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물흐르듯 읽히는 문장이 주를 이루지만 무릎을 탁 치게되는 부분들이 많다. 의외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제목은 사실 "진작 퇴사할 걸 그랬어", "진작 책방할 걸 그랬어"가 아닌 "진작 고민할 걸 그랬어" 의 마음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탄탄대로일 거라 믿었던 아나운서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왜 나에게만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찾아온 것인지, 한동안 많이도 억울해했다. 하지만 내가 내려 놓을 수 있는 자유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도 다름 아닌 그때 겪어낸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괴로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자주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내게 주어진 길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때, 혹은 아무런 갈림길도 남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 심지어 모든 길이 끊긴 것만 같을 때조차 내가 걸어갈 길을 분명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인생의 힘든 시기에 책으로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은 알것이다. 책은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내가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생의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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